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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에 지원해준 대외원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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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에 지원해준 대외원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미국의 한국에 대한 대외원조를 살펴보는 것은 경제왜곡과 산업발전이라는 양자 주장의 판단근거와 현재 미국의 한국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국에 지원해준 대외원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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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미국에서 한국에 많은 대외원조가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이 개발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의 원조가 한국 경제를 왜곡시키고 미국 경제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 한국에 지원해준 대외원조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한미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분석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되며, 다양한 시각의 사람들이 왜 그런 판단과 결론을 내리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좀더 명확하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전망을 내리는데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한국에 지원해준 대외원조는 무엇이 있었고 그 규모는 어떠했을가? 원조중에서 UNKRA(1950121일 창설, '유엔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와 같이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긴 했으나 UN을 전면에 내세운 원조는 제외하였다.

 

1. GARIOA 원조(19451948)

 

1945년부터는 1948년까지는 한국이 받은 원조는 미국의 점령지역 구호원조인 *가리오아(GARIAO)를 통해서 주로 제공되었다. 이 원조액은 194519488월까지 총 5210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지원품목은 주로 식료품, 의약품, 피복 및 농업용품 등의 소비재로 구성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의 기근과 질병, 구호 및 경제안정을 지원하였다.

 

*점령지 구제 정부 자금(Government and Relief in Occupied Areas)의 약자

 

2. 경제부흥원조(ECA 원조, 19491953)

 

가리오아 원조 이후, 1949119535월까지는 FAA(미국의 원조법)194812월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원조협정에 의거해 ECA(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 경제협력처) 원조가 제공되어 경제안정과 자립경제 확립을 지원하였다.

 

ECA 원조는 1950625일에 발발하면서 중단되었다. 이후 ECA 원조사업은 1951630일로 종료되고 미국연군사령부 관하기관인 국제연합민사처 UNCACK(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에 이관되어 SEC(Supplies, Economic Cooperation) 원조로 19535월까지 계속되었다. ECASEC 원조는 합쳐서 16,583만 달러에 이르렀다. 비료, 농업용품, 유류원료, 공업설비, 반제품 및 기술용역 등이 제공되었다.

 

ECA는 마샬플랜을 실행했던 기구로써, 마샬플랜은 공식적으로 '유럽복구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유럽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친 서방국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는 유럽에서 공산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나누게 되었는데, 유럽뿐만아니라 공산주의 확산의 위협에 대한 모든 지역에 경제원조를 실시하였고 그 대표적 사례가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원조이다.

 

여기서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 방지를 위한 전초적 성격으로 한국을 성장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FOA 원조(19531955)

 

19538월부터 19556월까지 대외활동본부(FOA: 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 원조가 경제안정 및 산업재건을 위해 지원되었다. 이 기간 중 원조액은 총 2610만 달러로서 식료품, 농업용 원자재, 시설재, 농업용품 등이 지원되었다.

 

4. ICA 원조(19551961)

 

미국 원조담당 기구가 FOA에서 국제협력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ICA)로 개칭되면서 그 이전 단계의 원조는 사라지거나 액수가 크게 줄어든 대신 거액의 ICA 원조가 제공되어 1955년 이후의 원조의 주축을 이루었다. ICA 원조액은 19557196112월까지 총 153,560억 달러 규모였으며, 광공업용품, 원자재, 교통시설이 주로 지원되었다.

 

1956년의 원조액은 3.3억 달러로 GDP23.6%에 달했다. 원조의 규모가 큰 만큼 경제 정책도 독자적으로 수립되기보다는 1952년에 설치된 한미 합동경제위원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5. PL 480호에 의한 잉여농산물 원조(19561969)

 

1956년부터는 PL 480(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ssistance Act of 1954, 미국 농업 교역 발전 및 원조법)에 근거한 영여농산물 도입이 개시되어 국제협력처(ICA) 원조와 함께 원조의 주축을 이루어, 19561969년 말까지 총 82,450만 달러 규모의 소맥, 원면, 우지 등에 지원되었다.

 

6. AID 원조(19621969)

 

미국은 19619월 원조법(FAA)을 개정하여 종래에 분리해 운영되어 오던 국제협력처(ICA)와 개발차관기금(DLF)을 통합하여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국제개발처)로 개칭하였으며, 또한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명확하게 분리하였다. 특히 증여형식의 원조를 지양하고 개발차관으로 전환토록 하는 기본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한국 원조는 1962년부터 AID 원조가 주축을 이루게 되어, 194519705월까지 그 규모가 102,550만 달러로 전체 원조의 23%를 점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초 이후로 원조 방식도 무상원조 중심에서 개발차관 위주로 바뀌었고 한국 정부 주도로 본격적인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됐다. 15개년계획(1962-1966)에서 정부는 1966년까지 5년간 연평균 7.1%씩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초과한 연평균 8.3%의 실질GDP 성장률을 달성했다

 

미국 원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긴 하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있다. 사실상 유럽의 부흥의 계획을 주로 한 마샬플랜을 담당했던 ECA가 한국에 대해서도 지원한 내용으로 볼 때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방어에 대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로 한국의 성격을 판단하였을 것이다. 모든 국가가 그렇겠지만 미국의 국익에 위해서 시작되었던 원조, 그러나 그 와중에서 위에서 나온 데이터처럼 한국은 고도성장의 자금을 얻었고 이를 한 변수로 해서 지금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미국의 원조가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키고 산업구조를 왜곡시켰다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세계적인 공산주의 세계에 속한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그리고 동유럽의 국가들이 이후 어떠한 경제적인 성장을 보였고 국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본다면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에 속한 한국의 입장이야말로 경제성장의 큰 기회의 장을 얻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일부는 모든 것을 우리 자립적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체적으로 다 해낼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의 제대로 된 역량과 국력을 키우고 올바르게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도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으로 유기적 관계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자본을 얻어서 생활하며, 그 자본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고 살아간다. 힘이 없는 유아기 때는 부모의 도움을 얻어서 그 힘으로 빨리 자립할 수 있다.

 

오히려 부모가 없어서 기본적인 후원을 받을 수 없는 아동이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후원체계가 없다면 그 성장이 더디고 불안정해질 것처럼 한국이 그 당시 미국 등으로부터 국제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어떠한 상황에 쳐했을지 합리적 추론하에서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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