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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오스타시스와 맹목적 추종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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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사법부

호메오스타시스와 맹목적 추종의 끝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는 용어가 있다. 이른바 항상성이라는 용어인데 호르몬과 자율신경계에 의해 유지되는 신체의 작용을 일컫는 이 단어의 대표적인 예는 외부의 온도의 변화에 따라 체온이 높아지면 땀이 나도록 하여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를 말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인간은 그러한 외부적인 물리적 환경으로부터의 자극 뿐만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그러한 환경으로 인지하는 상황에서도 호메오스타시스는 작동한다.

 

 

 

예를 들어 무서운 공포 영화나 감동적인 장면들을 볼 때 직접적으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그리 인식한 뇌의 작용에 따라서 인간은 그러한 일을 뇌내에서 실제처럼 인식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상황에 맞는 호메오스타시스가 작동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은 실제적인 외부적인 자극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인식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의 실제 유무와 살관 없이 자신의 신체적인 부분까지도 영향을 받는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홍보수단과 선전매체들을 동원한 다양한 여론전과 판매전략이 세워지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집행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자신이 무언가 객관적이고 타당한 판단하에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스스로 여길 수 있으나 실제로는 수많은 외부적인 인지적 자극에조차 판단이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식적 기반에서 보면 어떤 사안을 대할 때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생각과 판단의 정밀도를 높이고 본인에게 유용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논리적인 정합성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추론과 판단이 있어야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통사고로 인해서 아이나 사람들이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나 사람이 죽은 것은 안타깝게 느낄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적법한 운전규정을 준수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적 조건이 똑같이 작용할 것이니 국민 모두를 위해서는 그런 상황에서의 가해자나 피해자 둘 다의 이익을 고려할 법적 시스템이 마련되고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 어떤 여론적인 자극적 상황의 형성이 있어서 피해자를 감성적으로 더욱 안타깝게 여겨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사람은 그러한 피해자에게 더욱 동정적인 느낌을 가질 가능성이 크고 기존의 양자를 고려한 합리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실제가 아닌 인지적 자극수준에서조차 자신의 신체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그러한 일이 발생했고 여러 가지 여론적 환경에 의해서 동정심이 발생할 상황이 된다면 자신의 일처럼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여서 마치 자신의 가족이 다친 것이 아닌데 스스로 아파하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 평상시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호메오스타시스가 발현됨의 결과가 사회의 안정적인 법적시스템의 개악과 실제로 자신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인지적 고통의 제거에 불과하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힘없는 서민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수적인 입장에서 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의 시스템은 안타까운 상황과는 별개로 항상 다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의 이익을 전반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며, 감정과 별개로 이런 식의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스스로에게 유용한 것이다.

 

 

 

규정속도 유지와 전방주시와 같은 룰을 지키면서 통행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뛰어든 아이의 생명을 앗아갔을 때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 놓인 운전자의 잘못이 과연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수가 과연 이런 상황에서 놓일 가능성이 클 것인가? 아닌 것인가?

 

 

 

이러한 고려 없이 인지적인 수준에서의 호메오스타시스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감정적인 태도들은 자꾸만 사회를 비합리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감정적인 사람들은 논리적인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심리적인 수준에서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에 따라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집단이나 정치인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의 끝은 언제나 보았듯, 그 외 다수의 사람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언제나 사회가 잘못될 때는 해당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적 정치세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 히틀러의 나치당조차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대단했었다. 그 당시에 히틀러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이 매우 옳은 길을 가고 있고 잘못된 세상의 자극들을 자신들이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발생하는 원칙의 훼손은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더 많이 보이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늘어가는 듯한 모습이 우려스럽다. 이러한 집단의 준동은 우리와 같은 힘없는 일반 서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의 훼손과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호메오스타시스의 발현의 끝은 누구나 알다시피 해당 집단을 포함한 파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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